예수님의 표적 앞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다양한 반응들은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중에는 감격하며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는 자들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의외의 반응을 보이는데, 요한복음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먼저는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많은 표적을 보고도 결코 믿지 않는 이들입니다(12:37).  그들이 믿지 못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믿지 않기로 작정하는 인간들의 완악함을 그대로 버려두시는 하나님의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또 한 부류는 믿기는 믿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믿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출교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대놓고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는 연약한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12:42,43).  성경은 그들에 대하여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류는 가룟 유다처럼 배신의 물결에 휩쓸리는 사람들입니다.  3년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 가룟 유다의 배신이야말로 가장 충격적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수많은 기적들을 보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었으며,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그 아름다운 인격을 만나기도 하였을 텐데... 가룟 유다는 어떻게 그렇게 배반의 길을 가게 된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은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가자 그니라...” 등의 말씀으로 그가 지을 엄청난 죄에 대하여 아픈 마음으로 미리 경고하셨지만 유다는 결국 자신의 선택으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갔으며, 오고 오는 역사 속에 배신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요한은 “사탄이 그 곳에 들어간지라”라고 표현함으로써 유다의 죄가 단순한 불신앙도 아니요, 연약한 믿음도 아니요, 적극적인 사탄의 개입이며 사탄의 편에 선 행동이었다고 못 박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도 굳건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서 있는 듯 하다가도 때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위의 세 종류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굳건한 신앙인인 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불신앙의 나락에 떨어질 수 있으며, 또 때로는 세상과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믿음을 숨기고 마는 연약한 자리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탄이 집어넣은 생각을 뿌리치지 못하고 예수님에 대해 배반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 자가 되기도 합니다.  정말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이런 한계와 연약함으로 인해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히2:1)라는 말씀은 우리를 긴장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들은 것, 바로 우리가 들은 복음에 유념하여 그 믿음이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유일한 생명, 유일한 진리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점검하고 또 점검하여 단단해져야 합니다.  이제 지난 해 10월에 시작하였다가 중단한 <로마서 강해>를 다시 시작하는 이유, 다시 복음의 능력을 붙잡으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