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라는 것은 부정적인 개념으로 사용되는 단어로 타락한 인간의 성품에서 비롯된 마음입니다. 최초의 살인자 가인은 그의 아우 아벨에 대해 질투하여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왕 사울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다윗을 자기와 비교한 여인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질투하여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종국에는 자기가 먼저 죽었습니다. 그런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니…
성경에는 하나님이 질투하신다는 표현이 5차례나 나옵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칸나>인데 이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향하여 뜨거운 사랑을 가지셨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중심이 뜨거워 견디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병들었을 때, 혹은 무슨 큰 어려움을 만났을 때 그것을 애타게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과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사랑은 원래 독점적, 배타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 면을 가장 강렬하게 설명하는 단어가 질투입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아8:6). 진정한 사랑은 질투합니다. 질투가 없다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연인의 사랑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나요? 결코 없습니다. 연인이 나를 90%만 사랑하고 10%는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용납하시겠습니까? 심지어 99.99%를 가지고도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순도 100%의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 연인 관계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속성상 나누어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전부 아니면 전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심지어 아드님의 목숨마저 내놓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영적인 간음이라고 규정하십니다. 돈뿐이겠습니까?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이나 명예, 쾌락, 이성, 자녀들,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영적인 간음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선한 질투를 가지셨듯이 이제 우리들도 선한 질투를 가져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를 경쟁하는 곳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질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안다면 질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성령 충만하다면, 그 역시 질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겸손하면 질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를 경쟁하고, 하나님을 더 본받기를 경쟁하는 곳이 교회입니다.[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