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컬럼

선한 질투를 가지라!

By July 4, 2021July 9th, 2021No Comments

질투라는 것은 부정적인 개념으로 사용되는 단어로 타락한 인간의 성품에서 비롯된 마음입니다. 최초의 살인자 가인은 그의 아우 아벨에 대해 질투하여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왕 사울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다윗을 자기와 비교한 여인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질투하여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종국에는 자기가 먼저 죽었습니다. 그런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니…

성경에는 하나님이 질투하신다는 표현이 5차례나 나옵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칸나>인데 이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향하여 뜨거운 사랑을 가지셨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중심이 뜨거워 견디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병들었을 때, 혹은 무슨 큰 어려움을 만났을 때 그것을 애타게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과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사랑은 원래 독점적, 배타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 면을 가장 강렬하게 설명하는 단어가 질투입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아8:6). 진정한 사랑은 질투합니다. 질투가 없다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연인의 사랑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나요? 결코 없습니다. 연인이 나를 90%만 사랑하고 10%는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용납하시겠습니까? 심지어 99.99%를 가지고도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순도 100%의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 연인 관계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속성상 나누어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전부 아니면 전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심지어 아드님의 목숨마저 내놓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영적인 간음이라고 규정하십니다. 돈뿐이겠습니까?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이나 명예, 쾌락, 이성, 자녀들,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영적인 간음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선한 질투를 가지셨듯이 이제 우리들도 선한 질투를 가져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를 경쟁하는 곳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질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안다면 질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성령 충만하다면, 그 역시 질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겸손하면 질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를 경쟁하고, 하나님을 더 본받기를 경쟁하는 곳이 교회입니다.[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