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사람들은 여러 모로 우리 한민족과 유사합니다. 머리가 좋다든가, 거대한 나라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어서 열강의 침략을 많이 당했다든가 하는 면들이 그렇습니다. 특별히 다른 나라에 지배를 받았다는 면도 비슷합니다. 그런 면에서 히브리 민족은 한 수 위라 할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430년이나 노예로 살았고, 바벨론에 포로로 70년이나 지냈는가 하면, 나라 없는 설움을 수천 년이나 이어오다가 현대에 와서야 나라를 다시 회복하였으니 우리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오늘 광복절을 맞이하여서 기쁜 것 이상으로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바사 왕 고레스의 포고령을 접한 사람들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시126:1). 저들은 꿈에도 잊지 못하는 고국 이스라엘을 그리워하면서도 막상 돌아갈 수 없는 현실에 비관하며 살았는데 돌아갈 수 있다니 꿈인가 생시인가 하였을 것입니다.
‘광복’(光復)이란 빛을 다시 가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오늘 광복절 이후에 태어난 사람이 한민족의 피를 타고 났다고 해도 광복의 감격을 제대로 알 리가 없지만, 적어도 남의 나라에 와서 뿌리를 내린 사람들은 나라가 없는 설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나라 미국을 사랑해야 함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안위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아울러 모든 성도들은 진정한 시민권이 하나님 나라에 있기에 하나님 나라가 우리가 사는 현장에 힘 있게 임할 뿐만 아니라 확장될 수 있기 위해서 몸부림쳐야 합니다.
우리가 광복절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나라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함이기도 하고, 광복의 감격을 두고두고 기념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한 삶의 광복이 임하지 않은 시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인들은 광복이 임하지 않은 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렸습니다. 여기서 눈물은 피눈물이었을 것입니다. 피눈물이란 거의 희망을 잃어버린 눈물입니다. 처절하게 억압 학대를 당하면서 다만 살아남기라도 하려는 가운데 흘리는 눈물이 피눈물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씨를 뿌렸더니 열매를 맺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
이것은 우리 1세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사실 이민생활에서 피눈물이 흐를 때가 많습니다. 인종차별을 당하고, 언어가 되지 않아 멸시를 당하고… 이런 것의 수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면서도,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씨를 뿌려야 합니다. 언제가 기쁨으로 거둘 날이 반드시 올 것을 믿으십시오.[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