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5세기에 창궐했던 흑사병(페스트)은 유럽 인구 2/3에 해당되는 1억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중세의 사회와 교회에 어마어마한 지각변동을 초래했습니다. 아시아의 대평원에서 서식하는 쥐벼룩에서 발병했다 하는 흑사병은 1347년 이탈리아의 제노아 선박들이 시칠리아 섬에 도착하면서 유럽 전역에 퍼지기 시작하여 약 6년여 동안 2천 5백만 명을 희생시켰습니다. 중세의 사람들은 흑사병을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 여겼습니다. 중세 교회는 흑사병을 퇴치하기 위해 많은 미신들을 만들어냈고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유발시켰는데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을 내어 유대인들의 집단 학살을 유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종교 개혁 시기에 접어들면서 흑사병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마르틴 루터는 흑사병으로 동생들을 잃었고 루터가 살던 비텐베르그에서는 또 다시 흑사병이 돌아서 많은 사람이 피난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 때 루터는 <죽음의 역병으로부터 피신해야 하는가?>라는 소책자를 출판하였는데 거기에서 그는 흑사병으로부터 할 수 있다면 도망쳐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전염병에 대한 성직자로서의 소신을 밝혔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를 지켜달라고 간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소독하여 공기를 정화할 것이고, 약을 지어 먹을 것이다. 나는 내가 꼭 가야 할 장소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라면, 피하여 나와 이웃 간의 감염을 예방할 것이다. 혹시라도 나의 무지와 태만으로 이웃이 죽임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시기를 원하신다면, 나는 당연히 죽게 되겠지만 적어도 내가 내 자신의 죽음이나 이웃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누구든 어떤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지난 토요일 아침 예배를 드린 후부터 조금씩 몸이 으슬으슬 춥고 머리가 띵하더니 토요일 내내 설교 준비를 하면서 몸살 기운에 힘들어 했습니다. 주일에 설교를 평소보다 좀 힘들게 하였지만 그저 감기 기운인가 싶어서 빨리 끝나고 좀 쉬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대부분의 교우들과는 주먹 인사에 그치고 예배가 끝난 후에는 아예 교우들과의 접촉이 없었습니다. 헌데 주일 저녁에 아이들의 권고로 코로나 검사를 하니 두 번 다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와락, 주일에 만난 분들이 많은데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당회와 교우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걱정이 되시는 분들에게는 코로나 검사를 받아보시도록 권면하였고, 당장 저부터 자가 격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당장 새벽기도회 인도부터 부목사님에게 맡기고 약을 먹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이 글을 쓰는 화요일 오후에 이미 상태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주일 자가 격리 차원에서 교회당에 가지 않으려 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주 안에서 평안하시고 영육간에 강건하시기를 기도합니다.[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