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이 땅을 떠나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셨습니다. 베드로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바울이 고린도후서 7장에서 한 말씀에 따르면 세상 근심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근심이란 세상에서 나오는 근심, 혹은 세상 방식을 따르는 삶에서 비롯된 근심이며, 이런 근심은 사망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근심이 있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한 근심이 바로 그것이며 이는 우리를 회개에 이르게 합니다. 다윗이 그런 근심을 했습니다. 죄를 짓고 조마조마하던 차에 선지자 나단이 나타나서 “당신이 바로 그런 죄인입니다”라고 지적할 때 식음을 전폐하고 회개하였습니다. 베드로 역시 그런 근심에 휩싸였습니다.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주님과 시선이 마주치자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하셨던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이런 근심은 회개에 이르게 하고 그 영혼을 살립니다.
반면에 사울은 세상 근심에 빠졌습니다. 사무엘이 자신을 버리자 자기의 체면을 백성들 앞에서 세워달라며 전전긍긍했습니다. 가룟 유다도 세상 근심에 빠져 주님을 배반하고 또한 그렇게 행한 자신에 대해 실망하여 극단 선택을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정말 세상 근심의 끝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근심은 하지 말아야 하나 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살고 내가 속한 공동체가 삽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는 한 사람 때문에 나머지 가족들이 삽니다. ‘저렇게 살면 하나님 앞에 매를 맞을 텐데… 어쩌나…’ 그러면서 가족들이 하나님 앞에 축복된 생애를 살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한 사람 때문에 식구들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교회의 부흥을 위해 안타까이 근심하며 부르짖는 그 사람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 원리는 모든 영역에 적용됩니다. 하나님 뜻대로 근심하는 한 사람이 민족을 살립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 때문에 롯의 가족이 살았고, 모르드개 한 사람 때문에 유다인 전체가 보호받았습니다. 바울 한 사람 때문에 로마가 복음으로 전복되었습니다. 자기 민족을 살려달라고 부르짖은 존 낙스 한 사람 때문에 스코틀랜드가 살았습니다. 늘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여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선지자 예레미야의 절규가 새삼 우리의 마음을 찌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5:1). 누가 이 한 사람이 될 것입니까?[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