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역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문명이 발달된 남의 나라에서 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여러 면에서 낙후된 환경의 땅에서 산다면 그 자체로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오랫동안 선교사로 지낸 어떤 은퇴한 선교사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다시 선교지에 간다면 제일 먼저 가방 속에 무엇을 넣겠는가?” 돌아온 답은 유머 감각이었습니다.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웃을 수 있고 남을 웃길 여유가 있다면 그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지난 3년여 코로나 블루로 다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만 코로나 변이들은 아직도 진화하는 중이니 이것이 언제 끝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작년은 러시아에서 시작된 전쟁으로 말미암아 세계 경제가 휘청댔고 뛰어오른 물가가 가계 경제마저 숨 막힐 지경이 되게 하였습니다. 게다가 유난히 기후 변화로 인한 온갖 재해가 끊이지 않는 등의 암울한 이유를 대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 전문가들이 말하는 올해의 전망 역시 그다지 밝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헷세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당신은 내게 꽃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꽃이 없어도, 아니 그밖에 많은 것들이 없어도 나는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그것이 없이는 살 수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게 있습니다. 그것은 기쁨입니다. 기쁨의 노래가 없다면,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우울한 시기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기쁨입니다. 기쁨은 무슨 일이든 대처할 능력을 갖게 해줍니다. 기쁨을 가졌다는 것은 기가 꺾이지 않았다는 뜻이, 상황을 장악할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시간과 함께 상황은 반전되고 문제는 풀려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어떤 상황도 극복할 수 있는 기쁨의 원천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십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15:11).
그렇다면 어떻게 기쁨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기쁨의 기준이 바뀌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기쁨의 근거로 삼은 것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변치 않고 그를 사랑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한 우리는 언제라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쁨은 선택입니다. 항상 의도적으로 기쁨을 선택하십시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권이요, 자랑입니다.[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