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어거스틴은 4세기 말 5세기 초의 아프리카 히포의 주교였습니다. 그는 서방 기독교에 바울 이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성자였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많은 방황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도덕적으로도 타락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생아조차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를 성자(Saint)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가 변화받은 다음에 그만큼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50대 중후반에 쓴 <참회록>을 보면 ‘이런 사람을 성자라고 한다면 성자라고 부를 사람이 많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자신의 추한 행실들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는 성자인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모든 죄들을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신만이 간직한 자신만의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이 다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부터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볼 때 생각할수록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하신 말씀이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이 있습니다. 용서받은 죄인과 용서받지 못한 죄인! 용서받은 죄인이란 죄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할 때 우리는 용서받습니다. 그래서 용서받지 못한 죄인은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큰 죄든지 작은 죄든지 죄를 지은 대가는 사망이라고 성경은 선언하였습니다. 용서받지 못한 죄인은 이 땅에서도 죄 아래서 고생하다가 저 세상에 갈 때에도 그 죄로 말미암아 심판받을 운명입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구원받을 길은 세상에 전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복음은 인생 문제에 대한 참된 해답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괜찮을 수 있지만 이것만은 정확하고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을 믿으면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많이 봉사하고, 헌금도 많이 하고, 예배를 수없이 드렸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참된 믿음이 없다면 용서받지 못한 죄인에 불과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내(예수님)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그러므로 우리는 다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당신은 용서받은 죄인입니까, 아니면 용서를 받지 못한 죄인입니까?”[M]